개인의 회상

왜 개발자 전향을 다시 고려하게 됐을까?

worldstroy 2024. 6. 2. 23:29

1. 나의 배경

"졸업은 했는데, 개발은 잘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모르겠고. 아무데나 전공 살려서 취업해서 빨리 자리 잡아서 살고 싶은 마음 뿐인데.... 학교도 성적 맞춰서 온거구."

 

2022년 3월, 비전공생들이 개발자를 하겠다며, 우후죽순 부트캠프며, 국비지원이니 듣는다는 소식은 내겐 먼나라의 얘기에 가까웠다. 학교 성적이 안나올 만큼, 개발을 잘 못했었나?

 

솔직히 아니었다. 대학교 시절, 다른 학부생들보다 개발 언어를 습득해서 써먹는 능력 하나 만큼은, 교수님의 칭찬을 듣고는 했었다. 실제로 C++을 사용하는 임베디드 프로젝트,  자바스크립트+node.js를 사용한 졸업작품, java+spring을 활용한 웹소설 작가용 커뮤니티까지 다양한 언어를 활용하여, 대회에서 입상을 했었다. 심지어, 학교 내 학술제였지만, 내가 만든 프로젝트가 전시되기도 했다. 그 몇몇 대회에선 팀장까지 맡으며, 제법 한다는 칭찬을 받았었다. 지방에 있는 학교였어서 대학원생이 별로 없어서 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3학년 말부터 열심히 가르쳐줄 테니 대학원에 들어오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었다. 심지어 개중엔 이름만 들으면 알법한 인지도를 가지신 컴퓨터 공학 쪽에서 유명한 교수님도 계셨을 정도로 잘했었는지는 몰라도, 성실한 학생이었다.

 

하지만, 거절을 못하는 성격이 문제였을까? 학교를 졸업한 이후, 어떤 분야에서,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먹고 살건지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친구들의 부탁이긴 했지만, 잦은 개발언어 및 프레임워크의 변경도 어느 하나, 확실하지 못한 IT전공생을 만들었다. 다 그럭저럭 다룬다는 얘기도 학부 레벨에서나 가능한 얘기였지, 하나하나 뜯어놓고 보면 머릿속에 남는 것 하나 없었다. 졸업 작품을 만들었을 무렵까지도, 개발자로 나아갈지, 아니면 IT엔지니어가 될지, 그것도 아니면 전공과 다른 삶을 살지도 정해지지 않았으니까. 

 

2. 지금까지의 삶

 

그 어느 IT전공생들처럼 나도 역시 2022년부터 취준생 생활을 시작했다. 다른 애들과 달리, 아르바이트 겸 웹소설 작가 생활을 하며 벌어놓은 돈이 있었기에, 부모님도 얼마든지 길어져도 괜찮다고 했었다. 하지만, 소속이 없다는 것이 주는 불안감은 내 상상을 초월했다. 초, 중, 고 시절 자기주도적 학습이 잘되는 아이는 아니었기에, 대회에서 입상하겠던가, 학교 성적을 얼마나 받겠다든가하는 목표가 사라지니, 방황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도 다른 친구들이 그랬듯 코딩테스트 준비부터 시작했었고, 개발자가 되기 위한 "지원서"를 넣었었다.

 

하지만 잦은 개발언어의 변경, 부족한 퀄리티 때문인지 면접 때마다 개발 언어를 자주 바꾼 이유에 대해 묻는 면접관들이 생겨났었다. 이건, 이상할 것 하나 없는 일이다. 개발자라는 직업은 회사 제품을 직접적으로 만드는 기술자이자, 제품의 부족한 부분을 개선시키는 직업이니까. 하지만 난, 내가 말한 대답은 IT회사들의 마음을 울리진 못했다. 그리고 코딩테스트는 프로젝트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과는 전혀 다른 영역이었다. 마치, 벽보고 글쓰는 느낌이랄까. 전혀 앞길이 보이질 않았고, 개발자라는 길을 포기한 친구들과 처음부터 앞서나간 몇몇 코딩 괴물(IT전공 수업마다 한 두명씩 있는 그런 친구들)이 취준에 성공했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몇몇 면접에는 불러갔었지만, 1차 면접에도 붙지 못하는 상황만 이어졌다. 그러는 사이, 전혀 주도적이지 못했던 '코딩'에 대한 흥미도 식어가기 시작했다. 학교에 입학해서 처음 맞이한 방황기 때, 웹소설 작가라는 전혀 쌩뚱맞은 경험을 했을 적에도, 재미로 하던 일이 돈벌이 수단이 되니, 재미가 없어지는 불상사를 맞이했었다.

 

10년....20년.....30년, 앞으로 해야할 일인데, 과연 잘할 수 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어이가 없는 부분이지만, 그때의 나는 불안감에 떨고 있었다. 내가 첫번째로 취업한 회사에게는 참 미안한 일이지만, 그 쪽 길로 가고 싶어서, 지원서를 넣어서 취준을 했던 건 아니었다. 이른바, 가짜 자소서랄까? 단지 작가 경력이 있는 까닭에 다른 애들에 비해 회사의 직무에 맞춰서 자소서를 쓰는 능력이 좋았을 뿐이었다. 이건, 입사 이후에도 또래 친구들과 중고신입으로 이직하려는 선배들, 학교에서 친했던 후배들까지 자소서 첨삭을 요청했으니, 장점이랄까....

 

그래서 국내 한 보안업체의 QA(저연차라 QC에 가깝기는 함.)로 취업을 하게됐다. 다니던 회사는 표면적으로 봤을때도, 업무강도에 있어도 나쁘지 않았다. 주5일 (9 to 6) or (8 to 5) 출퇴근 선택제, 야근 및 주말출근 적음, 신입치곤 나쁘지 않은 연봉, 전공도 살렸음, 업무강도 무난, 무엇보다 성과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부서다보니, 시키는 부분만 잘 수행해오면 됐기에 문제가 없었다. 물론, 단점이라고 부를 만한 부분이 없을리는 없지만, 말이다. 

 

QA라는 직무의 특성상, 개발 파트에서 제품이 생산이 늦어지면  한가해지는 게 사실이다. 그러니까, 한 몇주는 정신없이 바쁘다가도, 한 몇주는 월급루팡을 하는 느낌이랄까? 처음 일년은 취업을 했다는 사실과 무난한 워라벨 속에서 혜이해진 부분도 없진 않았다. 지각을 해서 선배한테 혼난적도 있었으니까. 또, 한편으론 업무 특성상, 개발자들과 계속 논의를 해오면서, "왜 OO씨는 개발자 안해요? 학교도 컴공이라면서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아무 말도 없이 피하게 되는 내 자신이 한심해져갔다. 물론 업무에서 보람과 성취감, 성장이라는 걸 얻어낼 수 있는 직무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건 모르진 않지만, 저 질문을 들을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아파왔다. 대체, 내가 뭘 하고 있지?  어떤 걸 하고 싶은 걸까? 라는 의문만이 감돌기 시작했다.

 

 안정적인 직장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개인의 성장은 보이지 않았고, 업무가 있을 때는 괜찮았는데, 한가할 때 할 게 얼마 없다는 부분도 따분하게 만들었다. 결국은 내 자신의 캐릭터 성과 정체성, 그리고 나라는 인물이 삶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끌러가는 기분을 버릴 수 없었다. 이런 것들이 잘못된 것은 아니고, 나 역시도 잘 맞을 거라고 생각했으나, 1년쯤 다니보니까 맞지 않음을 느껴왔다. 

 

그리고 개발자들과 부딪혀오면서, 조금씩 코드를 보는 기회도 생길 수 있었고, 나라면 어떤 식으로 시스템을 개선할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관통했다.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고, 꼭 필요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이나 그렇듯, 시련의 시기는 있고, 젊었을 때의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도 있으니까. 속물로 보일 순 있지만, 모아논 돈이 있다는 사실도 재도전이라는 생각을 가능하게 했다.

 

2.  왜, 개발자가 되려는 걸까?

 

모든 개발자라는 사람들이 그렇듯, 

 

"성향에 맞을 것 같아서...."
"개발 (코딩)에 흥미가 있어서...."
"상상하는 것을 실제로 구현해낼 수 있다는 부분"
"매번 생겨나는 오류들을 해결해가는, 다른 일보다는 반복적이지 않은 업무 환경"

 

등의 이유는 컴퓨터공학과 전공생 출신인 내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IT 업계에서 일하고 싶은 생각은 많았으니, 그냥 업계에 취직한 게 다였다. 물론, 공부를 다시 하기로 하면서, 저런 부분들이 개발이란 것에 다시 흥미를 가지게 된 원동력임은 분명하겠지만, 한번 포기했던 걸 다시하는 이유는 아니다. 조금 이상할 순 있지만, 처음 입사한 회사에서 사정이 어려워진 탓에 "권고사직"을 당한 게 계기였다.

 

난, 개발회사의 직원이었고, 개발 언어만 쓰지 않을 뿐 개발팀의 일원으로 일했었다. 함께, 부대끼다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들의 업무를 보게 되지 않는가? 아무튼, 사내 모든 개발자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몇몇 개발자 분들이 한가로울 때도, 개발 관련 영상이나, 서적을 보고 계시는 모습을 보면서, 공허함을 느꼈다. 저 사람들과 조금 힘들다고 포기한 나라는 사람과의 격차는 엄청 벌어졌구나 하고. 또, 회사를 다니면서, 몇몇 개발자 분들께 끈질긴 구애(?)를 았던 부분도 고민의 이유였었다.

 

저 사람들은 왜 행복할까? 실력으로 인정받아서, 무언가 성취감이 보여서, 어떤 이유에서든 성장하려는 모습이 보인다는 부분은 나에게 자극이 되어 찾아왔다. 어떻게 보면 또 남들에게 끌러가는 것처럼 보일 순 있는데, "개발팀"에 있다는 사실이 개발을 해본 내 입장에선 "동기부여"를 만든 것 사실이었다.

 

"회사의 사정이 어려워서, 미안한 부탁을 해야겠다. 1달치 월급을 챙겨줄 테니까, 권고사직을 받아줄 수 있겠나?

 

처음 회사의 이사님에게 저 말을 들었을 땐, 하늘이 새까매지는 것 같았다. 자의가 아닌, 타의로 실업자가 된다는 불안감은 생각보다 컸었다. 이 회사에서 배운 커리어를 바탕으로 이직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부터 내 머릿속을 잠식했고, 업무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회사에서 위로금 챙겨준다며? 개발자, 다시 해보는 게 어때? 쉬운 길은 아니지만, 너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같은데.... 너네 동생도 노력하잖아."

 

권고사직이 통보되고, 아는 지인들에게 위로를 받을 무렵, 들은 말이었다. 내 남동생은 정말, 내 동생이 맞나 싶을 만큼, 대단한 녀석이다. 어릴적부터 똑똑하다는 소리를 들었으며, 나보다 더 빨리 방황기를 맞이했고, 고3이 됐을 무렵엔 후회를 했다고 한다. 직접 물어본 적은 없으나, 무슨 깨달음을 얻었는지, 아버지를 설득해 기숙형 재수학원을 등록했고, 들어가고싶어도 들어가기 어렵다는 전국에서 TOP 5 안에 드는 학교의 의대생이 됐다. 그리고, 어릴적에 방황을 했던 경험 때문인지 피나는 노력을 한 결과, 유명 대기업에서 장학금을 수여받는 학생이 되어 있었다. 즉, 앞으로의 인생은 어찌될 지 모르지만, 멋진 삶을 사는 건  분명하다. 

 

나는 나고, 동생은 동생이지만, 자극이 되는 건 분명했다. "나라고 못할 이유는 없는데..... 조금 어렵다고, 왜 그렇게 빨리 길을 포기했던 걸까? 동생도 1년 동안, 재수를 해서 성과를 만들어냈는데....." 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관통했고, 제대로해본 적 없는 노력이라는 걸 한번 해보기로 했다. 1년 10개월 동안, 코딩을 안하는 사이 줄어든 실력, 그리고 앞서나간 친구들도 있긴 하지만, 내 인생의 책임은 내가 지는 거니까.

 

3. 개발 재밌는가?

 

단순히 해봤다고, 다시 한다는 건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무책임한 행동이다. 하고 싶다고 잘할 수 있는 인간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만큼, 인생은 쓴 찻잔과도 같다. 열심히 하는 녀석보다 재능있는 녀석이 뛰어나며, 재능있는 녀석보다, 재능과 노력을 겸비한 녀석이 괴물이 된다. 열심히 해도 잘 못하는 녀석이 있고, 타고난 인간처럼 열심히 안하는 것같은데도, 잘 하는 녀석이 있다는 건 학부때 경험해봤던 것. 심지어, 1학년 때부터  앞으로 무슨 일을 할 건지 확실한 목표설정을 한 녀석도 있었다.

 

그래서, 원점에서 생각해보기 했다. 단지 처해진 상황 때문에 다시 개발자를 하려는건지? 나 스스로 개발자가 되고 싶어서, 그 길로 방향을 바꾼건지. 비전공생들이 개발을 시작하는 것과는 다르지 않는가. 개발 공부를 이미 해봤고, 잘 했는지는 몰라도, 해본 것이 주는 무료함은 충분히 경험해봤다. 그렇다보니까, "왜 개발자가 되고 싶어진 걸까"에 대한 물음이 머릿속을 해집어놓기 시작했다.

 

권고사직으로 회사를 그만둔다는 건 더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4년 동안, 실컷해보고, 싫어서 때려친 걸 다시 시작하는데는 이유가 피료했다. 처음에 공부를 했을 땐 단순히 별찍는 것 자체도 신기하고 재밌었다. 몇 시간 동안, 한 번도 엉덩이를 때지 않고, 식사도 하지 않고, 프로젝트를 했던 시기도 있었다. 정말, 대회에 나갔을 때는  친구들의 미팅 제안도 거절했을 만큼, 같은 일을 수행하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코드를 짜보면서, 코드의 효율을 고민했던 적도 있었다. 

 

어느 컴공 학부생이 그렇듯, 나 역시도, 에러가 발생하거나, 개발 아이디어가 떠올지 않으면, 정말 답답해 미칠 지경이 되고는 했었다. 그럴 때마다, 소설을 쓰면서 마음을 추스리긴 했지만, 내 앞에는 늘 영어로 써진 글귀들이 학부 생활 내내 자리해 있었다. 어쩌면 1년 10개월의 외도를 하게된 원인은 이러한 번아웃이었는지 모르겠다. 내 잘난 남동생은 엄청 빨리달려가는데, 나라고 뒤쳐질 순 없다는 생각에 채찍질을 했던 게 '코딩'에 대한 흥미를 박살나게 만들었던 것이다. 대학을 졸업한 무렵엔 이미 몸과 마음이 더 이상, 개발이 하고 싶지 않을 만큼, 지쳤던 거겠지.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도 반복될 꺼다. 아마, 다시 취업시장에 모습을 드러날 시기에도, 면접관은 내게 물어볼 것이다. 왜 다시 개발을 시작했냐고? 개발자 충원을 사유로 권고사직을 당해서냐고? 이제는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난, 본적이 있기 때문이다.

 

타고난 재능처럼 보이는 남동생의 공책에는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작은 글씨로 똑같은 영어 단어들이 뺴곡하게 써져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내가 개발자라는 꿈을 위하여, 더 나은 삶을 위하여 그만큼의 노력을 해왔는지에 대해 반성이라는 걸 하는 윈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다. 시장의 탑티어는 되지 못하더라도, 나 역시 노력할 수 있는 인간임을 보여줄 거라고. 다짐하고 다짐했다.

 

5. 마지막으로.

 

요즘, 개발자 시장은 한파가 불어닥치고 있다. 다시 시작해서 잘하게 됐다고 해도, 서른이 되는 나이에 다시 개발자가 되기 힘들다 싶을 정도다. 최근 몇년 사이, 많은 비전공자와 전공자들이 개발자가 되었고, 이미 개발자 시장의 구인난도 해소가 된 상태다. 수많은 회사와 산업에서 개발자가 필요한 상황을 앞당긴 것이 2020년 대 초를 집어삼킨 "우한폐렴"으로 인해서 화상 회의 등의 시스템 구축이 필요해서도 있었다. 그런 시기도 지나갔고, 심지어 스타트업에 대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도 사라진 상태다. 즉, 한창 사람들을 뽑을 때와 달리, 지금은 평범한 기업의 구인 광고도 지원률이 100 : 1 가까이 될 만큼 치열한 게 사람인 같은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보면 알 수 있다. 이전까지의 나였다면 새로운 도전을 망설였을 만큼, 중요한 사안이었을 것이다. 나 자신이 인정할 만큼, 도전하는 용기보다는 가진 것을 내려놓는 용기가 모라잤다. 그렇기에 늘 안정적인 선택을 해왔고, 두려움을 느꼈다.

 

"시작하기 위해 훌륭할 필요는 없지만, 훌륭해지기 시작해야 한다." - 지그 지글러
"힘은 이기는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당신의 투쟁은 당신의 장점을 발전시킵니다. 고난을 겪고 항복하지 않기로 결정할 때, 그것이 힘이다." - 아놀드 슈워제네거
"우리가 어려움 없이 삶을 갈망할 때, 오크는 역풍에 강하게 자라고 다이아몬드는 압력을 받아 만들어진다는 것을 상기시켜라." - 피터 마샬

 

하지만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다. 취업시장이 어렵다는 건 어느 직무나 마찬가지다. 내려놓은 것들을 영영 잃어버리는 것처럼 보일 진 몰라도, 미래를 향한 투자를 하지 않는다면 결국 시장에서 쫒겨날 수 있다는 걸 경험했다. 적어도 지금의 내 도전이 헛되진 않을 것이며, 내 선택이 확신으로 바뀔 거라고, 생각하며 부딪혀야 한다. 결국, 어떠한 도전이든 불안감은 실패에 대한 확률을 높일 뿐이다. 

"장애물이 클수록 그것을 극복하는 영광도 커진다." - 몰리에르
"도전은 삶을 흥미롭게 만들고, 도전을 극복하는 것은 삶을 의미 있게 만든다." - 조슈아 J. 마린
"성공은 최종적인 것이 아니며, 실패는 치명적이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계속할 수 있는 용기이다." - 윈스턴 처칠
"우리가 내일을 실현하는 유일한 한계는 오늘에 대한 우리의 의심일 것이다." - Franklin D. 루스벨트

 

이제는 포기하고 싶을 때면 도전에 대한 명언들을 머릿속에 상기할 것이다. 더 이상, 쉽게 포기하는 삶을 살고 싶지는 않다. 이전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포기하지 않고 나아갈 것이다. 조급해하지 말자. 주변인들의 페이스는 생각하지 말고, 나 자신만을 믿어보자. 하면 된다고, 할 수 있다고, 매일매일 외칠 것이다.